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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

시조계의 거장 백수 정완영 선생님과의 만남

백수 정완영 선생님과의 만남

 

 2011년 내가 아는 지인이 백수 선생님을 만나러 왔다고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다.

백수 선생님이 누구시죠? 나는 의아하게 물었다. 그 분은 어이 없다는 얼굴로 같은 동네에 사는데 백수 선생님을 모르냐고 했다.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시조 작가로 경향 각지에서 그 분의 말씀을 들으러 오는데"하고는 어처구니 없어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중학교 때 부터 시인이 되는 꿈도 꾸었었는데.....

 

지인을 내차로 백수 선생님께 모시는 바람에 처음 백수 선생님을 뵈었다. 90이 넘은 연세에도 정정하시고 본인의 시조를 몇편이나 줄줄이 외우시는 모습이 참으로 젊은 우리들 못지 않았다. 그 날 나는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 어떻게 그리 시조를 잘 지으시고 또 뵈올 수 있겠는지를. 선생님께서는 소박하게 웃으시며 시조를 짓게 된 동기를 말씀 하셨다. 겨우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조부님께 한시를 배웠고 그 영향으로 지금 시조를 지을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고 계신다고, 아울러 언제든지 찾아 오라는 말씀도 하셨다.

 

며칠후 나는 다시 선생님을 뵈올 수 있었다. 그 때 선생님이 시조에 대해 하신 말씀을 여기 옮겨 보고자 한다.

 

  시조에 대해서 간단히 생각해 보면 시조의 보법에는 5가지 수칙이 있다.

그 첫째가 定型을 지키는 것이다. 기본부터 배우라. 민족의 역사가 다듬어 놓은 그릇이라 무엇이던 담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둘째. 가락이 있어야 되겠다. 시는 소리없는 음악, 음악은 소리있는 시이다. 내재율이 무리없이 담겨야 한다. 셋째, 시조는 쉬워야 한다. 시조가 국민시이기 때문이다. 쓸 적에는 깊이 오뇌하고 무겁게 思量하고 곰곰 성찰하되 다 구워낸 작품은 쉬워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言短意長하라는 이야기이다. 넷째, 根脈이 닿는 시조 즉, 喜·悲·哀·樂·妙·玄·虛, 그 밖의 어디엔가 뿌리가 닿는 작품을 쓰라는 것이다. 다섯째. 시조는 격조가 높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시조가 아니다. 비속어 천속어가 난무하고 제 몰골도 수숩 못할 지경에 이르면 이것은 이미 시조가 아니다. 여섯째. 우리 정신의 본향이요, 우리 인성의 본류요, 우리 생활의 내재율로 흐름, 굽이, 틀림, 마디가 있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에서 시조에 대한 사랑, 열정, 그리고 붉디붉은 애국심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세상 사는 일에 바빠서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거의 선생님을 뵙지 못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이제 글도 쓰시지 못하실 정도로 연로하셨다고 들었다.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부디 다시 건강하셔서 젊은이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우시는 모습을 다시 보여 주시길 간곡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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