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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

많이 아픈 내 친구에게(수필)

어릴 때 난 참으로 어리석고, 가난한 시골뜨기였다.

얼마나 어리석었으면 8살이 되어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만 맴돌았을까? 그래서 나는 내 나이 또래보다 1살 많게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학교에는 들어갔으나 당시에는 노트고 책이고 학용품 모두 개인이 사야 하는데, 우리집에는 먹을 것도 없어서 개떡으로 2끼를 떼우고, 저녁엔 겨우 갱시기(갱죽)로 견디는 고단한 나날들이었다. 지금도 그런 곳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 때 우리 이웃집들은 매울 저녁 왜 그렇게 밥도 없는 그릇이 날아 다니고 상이 날아 다녔는지? 참으로 암울한 시대였던 것 같다. 그 때에 나는 꽤 부유한 내 친구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나보다 한 학년 위이지만 나이는 나와 같은 학생으로 잘 먹어서 부옇고 잘난 얼굴의 그 친구를 얼마나 부러워하고 가까이 가지도 잘 못했는지......?

 

그러나 그 애는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우리는 금방 친해져서 사춘기를 같이 지냈다. 봄에는 앞산에 꽃맞이, 잔대 캐기, 삐삐 뽑아 먹기, 여름엔 콩살이에 여치 잡기, 냇가에서 수영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물놀이 하기, 가을엔 메뚜기 잡기, 먼 들에 단풍놀이로, 항시 보지 못하면 궁금한 사이가 되어갔다. 그 친구의 책은 모두 내 것이었고, 그 친구의 옷도 모두 내 것이었다. 굶주렸던 내게 그의 존재는 참으로 행복한 선물들 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그의 집안의 사업이 번창하여 서울로 가게 되었고 우리는 헤어졌다. 가끔 소식만 어느 고등학교에, 어느 대학에 갔느니 하면서 들을 수 있었다. 향수처럼 보곺을 땐 하늘을 보고, 물속도 드려다 보고 그렇게 우리는 멀리서 존재만 느끼며 성인이 되어갔다. 언젠가 그가 아버지 사업을 이어 받아 잘 살고 있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쉴 때는 나도 사회 기반을 잡고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만큼 형편이 낳아진 후였다. 그리고는 훌쩍 잊어버린지 50여년! 그 사이 나는 무척 큰 어려움을 치렀다. 아직도 그 어려움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몸이 많이 안 좋아진 것이었다. 그러기 7년 몸은 그대로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아갈 즈음 들려온 소식은 청천 벽력이었다. 친구가 몸이 너무 안 좋아 어찌될지 모른다는......

 

만나보고 싶었다. 혹시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지금 아니면 시간이 없는데.....

좀체 시간은 나지 않고 내가 서울 병원에 치료 받으러 가는 날을 택해 결심하였다. 오늘은 만나고 시골로 내려가리라.

주소를 물어 물어 집앞에 당도하여 전화를 걸었다. 부인이 받았다. 지금은 곤란합니다. 지금 환자가 자고 있고, 말도 옳게 못하니 곤란하단다.

돌아서는 발걸음에 눈물이 베였다. 많은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혼자 눈물젖어 시골로 내려왔다. 사람이란 간사해서 바쁜 업무에 친구는 잊었다. 나도 몸의 상태를 나타내는 수치가 좋지 않아 남 생각할 겨를도 없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친구로부터 오늘 전화가 왔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잔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난 친구야 말 많이하지 마라. 힘들다.”란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사내 눈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래의 푸념뿐이었다. 그래도 친구에게 다시 말하고 싶다. 힘내라고 너는 절대 그렇게 쉽게 가지 않을 것이라고, 친구야 내 사랑이 있는한 너는 살아 있다고....

 

아픈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좋은 세상에서 다시 보자는 소리를 듣고

 

봄에는 꽃 따먹고, 여름엔 헤엄치고

가을엔 단풍놀이, 겨울엔 썰매 타기

그렇게

그림자 같던 아는 사람 있다오

 

보곺아 보곺아서 말하고 말하곺아

집앞에 다달아서 전화를 걸어보니

부인은 모르는 사람 가슴속에 눈물만

 

하늘에 비쳐보고 물에도 그려보고

너 하나 햇님되고 나 하나 달님되자

맹세는 뒤로 밀치고 먼 하늘에 이별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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