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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상해, 항주 문화여행 2일차(3)

서호(西湖, Xī Hú)유람

 항저우 서쪽에 위치한 면적 약 60.8㎢이며,  둘레는 15km, 길이가 동서 2.8km, 남북 3.3km이다. 평균 수심은 1.5m, 최대 수심은 2.8m인 거대한 인공 호수로 중국 국가급 풍경 명승구다. 2천 년 전에는 첸탕 강(钱塘江)의 일부였다. 서호의 이름은 중국 4대 절세 미녀 중 한 명인 서시(西施)의 미모에 비견된다 하여 지어진 것으로, 사자호(四子湖)라고도 한다. 서호는 빼어난 경관으로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송대 대시인 소동파가 아름다운 서호를 소재로 많은 시를 남겼다. 서호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는 서호 10경(西湖十景) 외에도 서호 신 10경(西湖新十景), 영은사(灵隐寺), 실크 박물관, 중국 찻잎 박물관 등이 있다. 주로 시계 방향으로 관람하며, 서호 각지에서 한국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서호 정원(화항관어, 花港觀魚 huāgǎng guānyú) : 서호의 남서쪽에 위치해있으며 늦봄 목련 꽃잎이 떨어지는 호숫가에서 한가하게 노니는 붉은 잉어를 바라본다는 뜻을 지니고 있음. 모란원과 어락, 배를 띄우는 항만 이렇게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슴

 

 

서호 10경

1.소제춘효(蘇堤春曉) 소제는 서호의 서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제방으로 북송의 시인 소동파가 항주에서 자사로 일하면서 쌓은 것이다. 소동파는 서호의 경치가 4계절 언제나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이른 봄 안개가 낀 새벽에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2. 곡원풍하(曲院風荷) 송나라 때 궁정에 바치는 술을 빚던 곳이 곡원인데, 연꽃이 활짝 피는 4~5월이면 술집 뜨락에서 피어나는 술 향내가 정원의 연꽃 향기와 함께 바람에 떠다니며 뛰어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경관으로 소제 과홍교 근처에 있는 경비정(景碑亭) 이름이기도 하다

3. 평호추월(平湖秋月) 서호의 세 개 제방 중에 백거이가 항주 자사로 임명되면서 호수바닥에 깔린 갯벌들을 정리하고 쌓은 제방인 백제(白堤) 서쪽 끝의 전망대로 평평한 호수에 뜨는 달을 뜻한다. 

4.단교잔설(斷橋殘雪) 한겨울 눈이 내린 후 가운데부터 녹기 시작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백제에 눈 녹는 모습이 마치 다리가 끊어진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항주는 몇년에 한번 눈이 내려 눈경치를 매우 좋아함

5.뇌봉석조(雷峰夕照) 서호남안의 夕照山위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오월왕의 황비가 아들을 낳자 그것을 축하하여 지은것이라 하며 “황비탑”이라 불렀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뇌봉탑이라 한다. 탑은 7층으로 되어 있고 추녀가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창문이 넓다. 옛날에는 뇌봉탑과 보숙탑이 서호를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서 서호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뇌봉은 백사전의 이야기와 더불어 남자를 상징하고 보숙탑은 미인을 상징한다고 한다. 석양 무렵 서호에 비친 탑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서 “뇌봉석조”라 불린다.

6.쌍봉삽운(雙峰插雲) 호수 서남쪽에 있는 남고봉(南高峰)과 서북쪽에 있는 북고봉(北高峰)에 구름이 걸릴 때의 풍경

7.유랑만앵(柳浪聞鶯) 서호 동남쪽에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들리는 꾀꼬리 소리가 고운 곳, 남송시절 황실 정원이있던 버드나무 숲

8.화항관어(花港觀魚)1699년 현업 황제가 잉어가 노니는 모습을보고 화강관위(花港觀魚 화항관어)라는 글씨를 쓴 비석을 세운곳

9. 삼담인월(三潭印月) 중국 지폐 1元 뒷면에 새겨질 정도로 유명, 서호 안에 섬이 있고, 또 그 섬 속에 호수가 있는데 섬 남쪽 3개의 석등롱에 불을 밝히면 이 불빛이 호수 수면에 반사되어 마치 3개의 달이 뜬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10.남병만종(南屏晚鐘) 서호의 남쪽에 있는 난핑(남병)산은 높이가 불과 100m인데, 길이가 몇 킬로가 된다. 산속에는 절이 많아 해가 질 때면 절에서 종을 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 '난핑완중’(남병만종)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또한 난핑산에는 절이 많다고 해서 '불국산(佛國山)’이라고도 한다

(중식 : 동파육+거지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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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熙帝의 親筆

청나라 강희(康熙)38년, 즉, 1699년에 현엽(玄烨)황제가 서호를 유람할 때 화항관어(花港观鱼)라는 글씨를 쓴 비석을 양어장 언덕에 세웠다. 고기魚자의 아래 받침이 불화변이라 물고기는 물에서 사니 점 세 개를 찍어 물수변 받침을 한 글자다.

뇌봉산(雷峰山)의 뇌봉탑(雷峰塔, Leifeng Pagoda)

이 탑은 오월왕(吳越王) 전숙(錢淑)이 북송(北宋)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977년) 때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지었다가 시련을 맞았다. '뇌봉탑을 쌓은 벽돌을 집에 가져다 놓으면 복이 온다'는 이야기와 '벽돌 속에 보물이 숨겨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밤마다 벽돌이 사라졌다. 결국 1924년에 무너지고, 2002년에 옛 모습으로 복원했다. 탑 꼭대기를 금으로 치장했는데, 금비용만 4 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엘리베이트까지 설치되어 있다. 조명이 잘 설치되어 있어 야경이 특히 멋지다. 탑 입장료 40위엔.

영은사(靈隱寺) 5가7종(조동, 법안) / 선불교

영은사(정체: 靈隱寺, 간체: 灵隐寺, 병음: Língyǐn Sì)는 중국 저장 성 항저우의 북서쪽 무림산(武林山), 비래봉(飛來峯)에 있는 선종 사찰이다. 사찰의 이름은 글자 그대로 영이 쉬어가는 절이라는 뜻이다. 중국에 있는 가장 크고 부유한 사찰중 하나이다.

사찰은 동진 때인 서기 328년 인도의 승려 혜리(慧理)에 지어졌다. 처음에 영은사는 작은 수도원이었는데, 오월국(907-978) 왕조 때 9채의 다층건물을, 18개의 큰 누각, 72의 강당, 1300개 이상의 숙소가 있어 3000명 승려가 거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래봉 동굴 및 주위 산에는 많은 불교 조각품들이 있는데, 대부분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남송 후기 영은사는 강남의 십대사찰로 손꼽혔다. 그러나 연이은 침략을 피할 수 없어서 여러 번 소실되었는데, 그 후 16번 이상을 재건하였다. 현재 건물은 청나라 말기에 복구된 것이다. 문화혁명 때도 사원의 일부가 소실되었다. 그러나 주은래의 은밀한 보호 때문에 대규모 파괴를 피할 수 있었다. 영은사는 영명연수 선사에 의해 중수되었다. 영명연수 선사는 북송 건륭 원년(960년) 오월국 충의왕으로부터 영은사 중수를 맡아줄 것을 요청 받은 후 대작불사를 이뤘는데 불전과 불당이 1300여칸이나 되었으며 영은사는 이 때 크게 일어났다. 현 영은사는 19세기 초엽에 복원된 것이다. 지금도 복원불사가 진행 중에 있으며 불사가 회향되면 현 규모의 12배가 된다고 한다. 영은사는 운림선사(云林禪寺)라고도 한다. 천왕전에운림선사(云林禪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강희황제가 쓴 글씨다. 현 대웅보전에는 중국에서 제일 큰 목불이 모셔져 있다. 높이 24.8m의 석가모니 좌상은 1952년 정강미술대학 교수와 예술인들이 합작해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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